아프리카 콩고

아프리카 콩고(Democratic Republic of Congo)(종합)

백두(흰머리) 2007. 4. 12. 14:39

콩고민주공화국(Democratic Republic of Congo)

 (2006.02.07~02.14)

 

 

ㅇ 수도 : 킨샤사(Kinshasa)

ㅇ 인구 : 5,270만명

ㅇ 언어 : 불어(공용어), 스와힐리어 등

ㅇ 화폐 : 콩고프랑(FC)

ㅇ 면적 : 2,344,885제곱킬로미터(한반도의 약 11배)

ㅇ 기후 

  - 열대고온다습

  - 연평균 기온 : 27도

  - 건기(5월~10월), 우기(11월~4월)

ㅇ 시차 : 7시간 빠름

ㅇ 환율 : US$ 1 = 429 콩고프랑(FC)

ㅇ 인간개발지수

  - 순위 : 174개국 중 142위

  - 평균수명 : 남41세, 여 43세

  - 성인문맹율 : 34.7%

  - HIV/AIDS 환자 : 130만명(2001)

  - 유아사망율(5세 미만) : 98명/1000명

  - 실업율 : 50%

ㅇ 1인당 GDP : 118US$(2005)

ㅇ 단순 노동자 평균임금 : 60~80$(월)

ㅇ 교육

  - 초등교육 : 6년(의무교육), 중등교육 : 4년

 

ㅇ 스와힐리어 한마디

 

  - 안녕하세요 = 잠보

  - 감사합니다 = 아산테 사나

  - 사랑해요 = 나쿠펜다   

 

 

 

 

콩고까지 가는 길

 

 인천-(캐세이퍼시픽 항공 CX419편)-홍콩-(SA287편)-남아프리카공화국(요하네스버그)-(SA1797편)-콩고(루붐바시)-(경비행기)-콩고(풍구르메)

 

 

 

 인천에서 홍콩까지 타고 갈 CX419편/ 2006.02.07 19:45 출발

 

새벽을 날고, 환승하여 날고, 또 환승하여 날고 날았다. 

 

 

루붐바시 도착(콩고 제2의 도시) 

 

우리 일행이 묶었던 숙소이다.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에어컨도 없고 소리나는 선풍기 한대 창문은 잘 닫히지 않아 모기는 들어오고 다행이 황열병 예방접종을 했으니 다행이지. 또 냄새가 장난이 아니네. 룸메이트가  비위가 상하다고  담배를 피우란다. 아무튼 하루를 여기에서 묶고 이튿날 풍구르메로 경비행기를 타고 출발하였다.

 

 

루붐바시 모습

 

콩고인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차량은 대부분 외국에서 오래 쓰던 차를 수입하여 운행하고 있었다. 무척 더운 날씨이다.

 

 

풍구르메 도착(목적지)

 

루붐바시에서 경비행기로 풍구르메로 출발하였다. 상공에서 바라본 콩고는 그야말로 드넓은 초원지대로서 푸르렀다. 그런데 코끼리, 호랑이, 사자 등 이런 것이 하나도 안보이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없단다. 콩고 방문 중에 동물을 본 것은 돼지, 소, 닭, 염소 뿐이었다.

 

 

우리 일행을 환영하는 풍구르메 주민들

 

그 들의 춤을 따라하니 무척 좋아했다. 나름대로 최고로 차려 입은 의상이란다. 이 사람들 아주 신났다.   

 

 

마을 주민과 반갑다고 악수하고, 차를 이용하여 마을로 이동하였다. 우리 일행을 실은 자동차가 흙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중에 길가의 사람들 무척 반겼다. 그런데 조금은 미안했다. 운전수가 조심해서 운전하면 먼지가 덜 날 텐데 으이그 그냥 냅다 달리네.

 

 

풍구르메 주민들의 환영식

 

마을에 도착하여 그 지방을 책임지고 있는 시장과의 미팅을 한 후 환영식장으로 이동하였다. 나를 환영하기 위해 나온 어린이(화동)와 함께 찰깍! 그 아이가 준 꽃은 길가에 즐비하게 피어있는 꽃을 꺾은 것이다. 그래도 고맙다. 무엇을 바라겠는가?

 

 

 

풍구르메 주민들의 환영 행사

 

무지하게 신경을 썼나보다. 단체복을 입고 열심히 노래한다. 이 뿐만아니라 춤, 악기연주 등 다채로운 공연이었다. 특히, 그 들이 가꾼 곡식과 염소를 선물로 받았다. 나중에 염소는 잡아 먹었다. 그것이 예의란다. 

 

 

풍구르메 주민들

 

마을 사람들 모두 나온 것 같다. 누리끼리 한 사람들을 처음 본단다.

나도 검은 사람들을 한 번에 이렇게 많이 보기는 처음이다.  

 

 

 

Majengo 초중학교 외부 모습 

 

 

Majengo 초중학교 방문

 

학교 교육환경은 형편없었다. 칠판은 시멘트를 바른 후 페인트 칠하고, 분필은 왜 이리 잘 부러지는지, 창문도 없고, 지붕은 새고, 바닦은 흙이고, 전등은 없어 어둡다. 그래도 공부하는 아이들이 대견하다. 우리나라 50년대와 비슷하다.

 

 

우리나라를 소개하는 수업 장면 

 

 

수업에 임하는 학생들

 

교과서도 공책도 없고 연필도 뭐 그렇다. 모두 팔짱을 끼고 공부하는 모습이 이채롭다(흙장난 방지용) 장난하는 것은 우리 아이들과 비슷하구먼 

 

 

우리가 묶을 Hotal HewaBora(?)

 

모든 것 생략/ 시멘트 바닦위에 나무 간이침대 놓고 모포 한 장 끝./ 화장실없고, 샤워실 당연히 없고 뭐 그렇다. 그래도 현지인들은 여기서 자는게 꿈이란다.

 

  

등목하는 우리 일행들

 

물도 별로 없어 눈치가 보인다. 여자들은 공동 화장실에 물 한 양동이 들고 가서 대충 끝내야 한다. 

 

 

길거리를 배회하는 돼지들

 

돼지를 가두어 키우지 않는다. 이유는 먹이를 줄게 없으니 너희들 알어서 나가서 뭐든지 먹고 오라는 얘기. 저녘에는 자기 집으로 온단다.

 

 

빵 가게

 

집에서 만들어 길가에서 팔고 있다.

 

 

채소를 채취하여 돌아오는 주민들 

동 트기전에 2km이상 떨어진 밭에서 채소를 거두어 돌아온다. 집 주변에도 밭이 많지만 주변에는 농작물을 심지 않는다. 왜, 돼지나 염소가 다 뜯어 먹으니까.

 

 

호텔 앞에 사는 일가족과 함께

그래도 비교적 잘 사는 편이다. 내 옆의 여자는 인조 머리카락이다.

 

 

결연 아동 가정을 찾아서

 

목사님 댁이란다. 14명이 이집에서 산단다. 다 잘수가 없어서 몇 명은 이집 저집에 나누어서 잔단다. 아이고 많이도 났다.    

 

 

 

간이 우물

 

동네에 간이 우물이 있으나 건기 때는 물이 마르고 우기 때만 뿌연 물을 얻을 수 있다.

 

 

 

유일한 식수원

 

풍구르메 3만명의 주민이 몇 개의 식수원에 기대여 살고 있다. 이 식수원은 유일하게 수도 꼭지를 통해 하루에 2번씩  제공하는 식수원임/ 예전에 프랑스인들이 광산을 운영하기 위해 개발한 것/ 최근에 기증한 것이다.

 

 

식수원 주변의 가게

 

 

공립 보건소를 찾아서

 

예전에 '국경없는 의사회'에서 운영하던 이 지역의 유일한 의료기관 이다. 그러나 시설은 형편없다. 의료기기 뿐만아니라 의약품이 절대 부족한 형편이다.

 

 

 

공립 보건소 입원실

 

우리 일행이 방문했던 그 날도 영아 한 명이 이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가 슬피우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평균 수명이 낮은 이유가 영아 사망율이 높기 때문이다. 

 

 

공립 보건소의 간호사

 

 

사립 보건소를 찾아서

 

이 지역에는 사립보건소도 한 군데 있다. 역시 의료환경은 열악하다. 

 

 

Methodist 초중학교(사립)를 찾아서

 

이 곳이 교장실이다. 3평 정도의 방에 헌 책상 하나다. 우리가 가져간 선물(축구공 등)을 전달하였다. 무지하게 아이들이 좋아한다. 좀 더 가져 갈 것을!

 

 

가방도 있고, 공책도 있네. 이 학교가 조금 형편이 나은가 보다.

 

 

고아 소녀(OVC)를 찾아서

 

흰 옷 입은 아이가 OVC이다. 다른 집에서 같이 산다.

 

 

 

미미와 함께 무까리를 준비하는 모습

 

콩고 사람들의 주식은 고구마와 비슷한 것에서 채취한 전분으로 반죽을 하여 그릇에 넣고 약한 불에서 젓으며 익히는 무까리이다. 달도 않고, 염분도 없다. 아무 맛이 없다. 채소도 먹는다. 그리고 특별한 날에 고기도 먹는다. 우리 일행을 위해서 전담 요리사가 루붐바시에서 부터 따라와 매끼니 마다 요리를 하여 음식을 제공하였다. 미미 고마워! 

 

 

진수성찬이다. 마을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니카시(Likasi)로 이동

 

전용차량(도요타에서 제작, 기름통이 2개 ; 주유소가 별로 없기 때문에, 일본 사람들 벌써 콩고에 알맞은 차량을 개발하여 제공하고 있었다. 장래에 차 많이 팔어 먹겠군)을 타고 니카시로 3시간 정도 이동하였다. 산을 넘고 광산을 지나 평지를 달릴 때는 먼지와 함께 신나게 달렸다. 어떤 곳은 도로의 끝이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과속 감시카메라도 없고 교통경찰도 없으니 신나게 달렸다. 

 

 

니카시(Likasi)에서 묶을 호텔

 

겉 모습은 근사하다. 방 한칸에 한 명만 써야 된다. 이 곳에서 남자 둘이 한 방을 쓰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남여는 괜찮다.

땀에 먼지에 샤워를 할려고 물을 틀으니 찔찔찔 나온다. 그래도 머리에 비누 칠하고 몸에도 대충 비누칠한 후 물을 틀으니 아니! 왜 물이 안나오지? 나갈 수도 없고 와 미치겠다. 눈은 점점 매워 오고 소리 소리 질러 현지 가이드 찾았지만 헛 수고. 한 시간 정도 지난 후에 틀으니 물이 질질 나오길래 번개 불에 콩 구워 먹듯 대충 끝냈다. 큰일 날 뻔 했다.

 

 

 

르암보(Lwambo) 방문 환영 행사 모습

 

 

 

대추장의 환영사

 

 

각 부족의 추장들

 

 

 

추장과 함께 찰깍

 

 

환영 식장에 나온 아이들

 

정말이지 어떻게 해야 하오리까? 이 아이들의 머리 카락이 노랗다. 이유는 몸에 필요한 단백질이 모자라서 머리카락의 단백질을 몸에서 흡수한다고 한다.

바지의 고무줄이 없어서 줄줄 내려간다. 그래서 고추도 보았다.

  

 

디쿨라(Dikula) 마을(전통마을) 방문 

 

 

부엌 모습 

 

 

거실 겸 방 ; 벽에 붙어있는 그림이 돋 보인다.

 

 

생선가게 

 

 

보건소 ; 이 곳은 보건소 같다. 

 

 

 

축구하는 아이들 

 

 

 

학교 

 

 

교실  

 

 

교사들과의 미팅

 

보수는 형편 없으나 자부심이 대단하다.  

 

 

아프리카의 목각들

 

비교적 가격은 저렴하였다.

 

 

 

 

이렇게 일정을 마치고 돌아왔다.

 

콩고민주공화국(Democratic Republic of Congo)을 가다

 

                                                                                                                                                                                  김  장  용

 

  2006년 2월 7일부터 2월 14일 까지(8일간) 국제구호개발기구인 ‘월드비전’의 대전․충남지부에서 주관하는 월드비전 콩고 파트너십 투어의 일원으로 콩고민주공화국(콩고 DRC, 이하 콩고)풍구르메(Fungurume)사업장(ADT)을 둘러볼 수 있는 영광을 얻게 되어 교육관계자, 언론인 등 10명이 다녀오게 되었다.

  우리 일행은 콩고의 풍구르메 사업장을 가기위하여 인천국제공항 - 홍콩 - 요하네스버그(남아프리카공화국) - 루붐바시(Lubumbashi, 콩고 제2의 도시) - 풍구르메 까지 장장 20시간 이상을 비행하였다. 웬만한 체력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었지만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했다.

  고사성어에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한 번 보는 것이 백번 듣는 것보다 더 낫다라는 뜻일 것이다. 말로만 듣던 아프리카, 아프리카 중에서 가장 아프리카다운 콩고에 도착하여 풍구르메 사업장을 둘러보면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일행의 최종 목적지인 풍구르메 사업장을 가기 위하여 루붐바시에서 경비행기로 가면서 하늘에서 바라 본 콩고는 무척 아름다웠다. 사바나 기후답게 푸른 초원과 울창한 수풀이 어우러진 대자연의 파노라마를 보면서 무한한 기능성을 엿볼 수가 있었다.

  그러나 조금 전의 아름다움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풍구르메 4만 명의 주민들이 식수를 구할 수 있는 곳은 취수장 3곳에 불과하였다. 그것도 하루에 시간제로 2번씩만 공급하고 있었다. 따라서  물을 얻기 위하여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온 식구들이 3~4시간을 걸어서 오니 이는 물 전쟁이었다.

  열악하기는 교육환경도 마찬가지였다. 취학아동 1만 명중 6300여명만이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우리 일행이 방문한 1800명이 재학 중인 이 학교는 11개의 교실, 한 평 남짓한 교장실, 그리고 운동장뿐이었다. 교실이라지만 창문이나 의자, 책상, 교단 같은 것은 찾아볼 수가 없고, 그나마 오전에는 저학년, 오후에는 고학년으로 나누어 2부제 수업이 진행되었다. 창문 없는 창틀을 통해 흙먼지가 그대로 들어오고 낡은 천장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으며 교실 곳곳에는 빗물을 받기위한 양동이가 놓여져 있어 학생들이 없으면 학교라 할 수 없는 실정이었다. 뿐만 아니라 교과서가 없어 교사가 시멘트 칠판에 분필로 적고 아이들은 필기구가 없어 눈으로 만 칠판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외에도 다 열거할 수 없는 열악한 교육환경을 보면서 교육계에 몸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주거 시설 역시 대부분 흙벽돌로 지은 10평 남짓한 음습한 움막형태의 집에서 평균 7~8명의 자녀와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보건소 시설 역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열악하였다. 몸이 아파도 제대로 진료를 받을 수 없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제대로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채 꺼져가는 콩고의 희망들! 어떤 사람은 너무 감상적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겠지만 현장을 직접 본 나는 정말 가슴이 아팠다. ‘그들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할 텐데’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려 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우리나라에 있는 중장비, 교육시설물, 의료장비 등을 가지고 와서 전부 밀어버리고 우물, 집, 학교, 병원 등을 세웠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였다.

  그러나 그런 방법이 최상은 아닐 것이다. 그들에게 고기를 잡아주는 것보다 그들이 고기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 더 근본적인 대책일 것이다.

  이러한 현지 상황을 잘 알고 그들이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길러주기 위하여 여러 가지 사업을 펼치고 있는 ‘월드비전’에 감사한 마음과 응원을 보내고 싶다. 특히, 그 들을 일깨우기 위하여 불철주야 노력하시는 현지 월드비전 관계자님들께 지면으로나마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하고 싶다.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속에서 콩고의 아이들이 눈에 밟혀 쉽게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때 뭇지 않은 웃음과 새까만 눈동자로 나의 주변을 서성이던 콩고의 아이들, 그들을 위하여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 우리는 하나이다. 우리가 어려웠을 때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았듯이 이제는 우리도 빚을 갚을 때가 된 것 같다.

  후원자님들과 함께 그 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희망의 싹을 틔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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